제목 : [사람人] ‘K-커뮤니티센터 건립’ 성공 후, 사업에 전념하는 “황원균회장의 ‘좌절 없는 삶'”

작성일 : 2023-03-23 21:41
조회수 : 453
작성자 : admin
우리 이민 1세대들이 피땀 흘려 일군 역사 물이자 후세들에겐 커다란 유산이 될 워싱턴 ‘코리안커뮤니티센터’가 건립되어 벌써 워싱턴 동포사회 랜드마크가 되어 있다.

미주동포사회 산 역사로 기록될 이 K-센터 건물은 100대 이상의 주차장이 있는 4층 3만 4천 스퀘어 피트 면적으로 2층 대,소 강당에서는 거의 매주 동포사회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지난 연말, K-센터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사회(KCC) 부이사장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다시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이임하는 황원균 전 센터건립위원회 대표간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2013년 센터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표 간사로서 사업에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오직 센터 건립에 매진해 왔었다.

그는 한국 소주(처음처럼)와 막걸리(국순당), 맥주(Kloud)를 비롯해 일본 정종, 중국 고량주와 백주, 그리고 다양한 와인과 위스키 등의 주류를 수입·유통하고 있는 영원 무역(Young Won Trading)을 운영하고 있다.

순수 동포기업(자기자본)인 영원무역은 워싱턴 지역(DC, MD, VA)은 물론 인근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까지 주류 도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굴지의 기업이다.

그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고량주인 ‘영천하’에 이어 스페인 주류회사와 ‘올리바 맥주’ 독점 계약을 마치기도 했다.

영천하는 백주의 일종으로 내중국 몽골리안 지역에서 수수를 완전 순수하게 정제하여 제조 되는 순도 높은 알콜 농도 43~53%의 증류주이고, 올리바 맥주는 곡물을 사용하지 않고 건강에 이로운 올리브를 가지고 Gluten Free 방식으로 생산된 특별한 ‘그린맥주’이다.
중국 전통 고량주 ‘영천하’ 독점 계약을 마치고 기념 촬영
그의 의욕적인 사업 확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Beijing, Tokyo, Seoul(B-T-S) 아시아 3국의 수도 이름을 딴 고급 수제 맥주에 이어 ‘스트레이트 버본’으로 인정받는 켄터키 핸드 크레프트 양조장과 계약을 맺고 자체 상표인 ‘山男’(야마 오도구) 등을 로컬 브류어들과 함께 판매하고 있다.

텃새가 심한 주류업계 특히 배타적인 위스키 시장에, 위스키 변방인 한인이 최초로 자체 브랜드로 버번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가 오늘날 사업에 성공하기까지 걸어온 상도(商道)에는 누구로부터 물려받은 지름길도 그리고 탄탄대로도 아니다. 한발 한발 최선을 다해 비지니스의 정도를 걸어온 길이다. 그래서 ‘자기자본’ 기업이다고 표현한 것이다.

“내가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 좋은 멘토를 만난 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사회 초년병으로 근무한 회사는 무교동에 있던 나전모방이라는 섬유 수출입 회사다.

이 회사의 대표는 노준용 씨로 그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노재봉 씨의 아버지이시다. 이 회사에서 그는 27살 젊은 나이에 무역부 대리가 되어 노준영 사장으로부터 비지니스의 노하우를 차근차근 배웠다.

나전모방에서 무역 경험을 쌓을 무렵, 그는 큰 형님 회사인 ‘일광무역’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지사장으로 파견되어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는 “1985년 한 젊은이가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 국가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툭하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북한 대표부가 있는 어수선한 나라, 28개 부족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오지, 그곳에서 한국에서 생산되는 북어와 빨랫비누를 현지에 내다 파는 일을 했습니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라이베리아 사람들은 북어를 좋아하는데 노르웨이에서 들여오던 동태가 끊겨 한국의 동해 명태가 그 자리를 채웠을 때이고, 팜오일과 카사바잎을 쌀과 함께 주식으로 먹다보니 몸에 있는 오일 기운을 깔끔히 씻어주는 한국산 빨랫비누가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무역을 할 법적 제도나 시스템마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코트라, 금호타이어 마저 철수하자 일광무역 아프리카 지사도 철수하게 된다.

1986년 1월, 그는 아프리카에서 마지막 남은 물건을 정리한 돈 500달러 만 쥐고 미국의 무역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방문차 왔다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한다.

우여곡절 끝에 워싱턴에 둥지를 턴 그는 동양식품 세일즈 맨을 거쳐 메릴랜드에 식품 소매상을 차리게 된다.

“프린스조지카운티 슈틀랜드에 차린 동양 식품점에서 저는 소비자의 취향, 가격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일본 식품에도 정통하게 됐지요. 이 리테일 경험이 뒷 날 큰 힘이 됐다고 봅니다”고 회상한 그는 “1992년 워싱턴DC 플로리다 마켓에서 식품도매상을 차리게 되었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근무 시간인 7시에서 오후 3시까지 일을 한 후, 밤 9~10시까지는 카고밴으로 배달을 끝내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였다”고 전했다.

남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새벽을 열면서 부지런히 도매 사업을 키우고 있는 그에게 뜻밖에도 주류업계에 진출할 좋은 기회가 오게 된다. 농협과 거래를 하고 있던 그에게 안동 소주, 배로와인, 이로주라는 3가지 아이템의 미국 수입업체를 찾던 농협 관계자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갑자기 찾아 온 것이다.

사장이라는 분이 땀 흘리며 쌀자루를 트럭에 싣는 모습을 본 농협 관계자는 그를 주류수입업체로 낙점하고 즉석에서 계약했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 ‘영원무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던 이민생활인데 오늘 이렇게 아메리칸드림을 일구게 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한 우물을 파는 것, 즉 꾸준히 한 길로만 걸어온 것과 부지런한 것이 성공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고 대답했다.
K-센터 건립을 위해 50만 달러를 지원한 페어팩스카운티 정부에 감사패를 전달한 황원균 건립준비위 간사.
<<이렇게 사업 확장에 열심인 그 이지만 동포사회를 위해서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봉사했다.>>

그의 크고 작은 단체 경력은 인터넷 검색창에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2008년 한국에 광우병 태풍이 몰아칠 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괴담’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과장된 주장이거나 과민한 반응과 국민의 오해와 불신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는 기자회견을 과감히 했는가 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2년여 동안 2200명의 서명을 받는 등, ‘한미FTA’ 풀뿌리 운동을 주도하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서명식에 초청되기도 했다.

또한 2010년부터 40여 년 전 가난했던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미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에게 해마다 추석잔치을 베풀었는가 하면, 2011년부터 몇만 달러 규모로 수차례 페어팩스카운티 공원재단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페어팩스 카운티 공원국과 한인사회의 연결고리 역할도 잘 감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황 회장을 비롯 가족들 모두 공원국 ‘올해의 박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앙심이 투철한 황 회장은 2020년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있는 성 정바오로 한인성당 사목회장을 2년 동안 역임하기도 했다.

2006년 제14회 샌프란시스코 미주체전 워싱턴 단장을 맡으면서 시작된 그의 단체 봉사 이력은 2009년 버지니아한인회장, 2015년 연방의회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 시켰던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민주, CA) 워싱턴 후원회, 2013~2016년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장, 2018년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을 역임했다.

그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국민훈장 ‘석류장’. 201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각각 서훈했다.
2018년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식
마이클 혼다 의원 후원행사
동포사회 역사가 된 K-센터 건립기념 동판식, “페어팩스 군수와 유미 호건, 워싱턴총영사 등이 참석하여 축하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강남중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