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이민과 한국이민(이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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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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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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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시장을 비롯한 중국계의 정치적 영향이 큰 곳이다. 경제적 영향력도 굉장하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꼭 찾는 ‘차이나타운’은 세계적 명소가 됐지만, 이 부근을 비롯한 중국계의 부동산 재력은 굉장하다. 물론 중국 이민이 우리보다 앞섰지만, 그들의 미국에서의 약진은 굉장하다.
중국음식을 비롯한 중국문화는 미국 주류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지난 20년간 연방정부에는 꼭 한 두 명의 중국계 연방장관이 역임되어 왔고 미국 최대의 대학인 UCLA총장도 배출했고 워싱턴 주의 주지사도 배출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은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초기 중국 이민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올 때는 ‘엔젤’ 섬에 있는 수용소를 거쳐야 했는데, 그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그곳은 수용소라기보다는 감옥 같았는데, 많은 중국인들은 입국심사를 받기도 전에 영양실조와 병으로 죽어갔다. 그렇게 열악한 수용소에서도 그들은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는 꿈을 시로써 벽에 써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입국한 중국인 노동자들은 서부로 뻗어가는 미 대륙의 철도공사를 위해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쿨리”라는 천박한 별명을 들으며 고생했지만, 그들은 힘들게 번 돈으로, 공동으로 조금씩 샌프란시스코에 땅을 사기 시작했다. 그들의 당시 현실은 각박했지만 꿈을 갖고 살았으며, 고생해 번 돈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뒤에 오는 중국계 후손들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1903년 1월 13일은 미주이민사의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1902년 11월에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 50명과 부두노동자 20명, 배꾼들과 상인 30명과 그리고 머슴, 학생으로 구성된 총 120여명으로 구성된 제1차 하와이 취업이민단이 ‘갤릭’호라는 이민선을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드디어 1903년 1월13일 미국 하와이에 도착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 하와이 취업이민자는 1905년 취업이민이 중단될 때까지 모두 64회에 걸쳐 총 7,415명에 달했다. 이들의 이민초기의 생활 또한 중국계 이민과 같이 열악했고 고생이 극심했다. 긴 시간 뜨거운 태양아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 하는 것은 매우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으로 그 큰 고통과 몰려오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외로움을 극복하며 고생을 감내해냈다. 초기 이민자들이 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많았기에 자연히 신붓감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명한 ‘사진신부’였다.
그들은 주로 인천 내리교회에서 보내오는 사진만 보고 신부를 선택했다. 또한 그들은 혹독한 노동에서 어렵게 번 돈을 갹출하여 모국으로 많은 액수의 독립자금을 보냈다. 사탕수수 농장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달팠지만 희망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한국계의 미국 진출은 눈부시다. 이미 김창준 전 하원의원을 배출했고 지금 미국 각 주에서 활약하는 한인 정치인들은 큰 기대와 희망을 주고 있다. 최근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에서도 미 정계진출이 두드러져 큰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버지니아의 마크 김 주 하원의원은 이미 4선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워싱턴DC에서는 한인 교육감을 배출했고, 버지니아 페어팩스카운티의 문일룡 교육위원은 이젠 굉장히 존경받는 교육위원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주목받는 곳은 메릴랜드 지역이다. 작년에 기적과도 같이 ‘마크 장’과 ‘데이빗 문’ 두 명의 주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더구나 자랑스러운 것은 미주 한인사회에 최초로 ‘유미호건’ 주지사 영부인이 탄생케 된 것이다. 또한 현 백악관에는 이미 15명 이상의 정책자문관들이 입성해 일하고 있다.
이렇게 발전해가는 한인사회의 기쁜 소식은 한인밀집지역인 북버지니아에 ‘한인커뮤니티센터’ 건립이 구체화 되고 한인사회의 큰 조명과 후원을 받고 있는 점이다.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회의장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주미대사관과 각 한인회도 동참하고 I.R.S로부터 모금에 대한 세금면제가 허락된 상태로 모금운동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리 이민 1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 후세들을 위한 자랑할 만한 커뮤니티 센터가 건립되어 많은 회의 공간과 문화공간이 생기고 한인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줄 커다란 사회적 유산일 것이다. 우리 이민 후세들이 미국 땅에서 존경받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 커뮤니티센터건립에 함께 참여하여 함께 뭉칠 때 위대한 이민역사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이세희 리&리 재단 이사장 MD>